Jun
29
8:00 AM08:00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의미

로마서(Romans) 8:28~30

하나님을 사랑하고 부름을 받은 성도가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롬8:28절 말씀을 오해하고 오용했는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성도들이 분쟁이 생기거나 의견충돌이 생겼을 때 서로 협력하고 양보하여 하나님의 선을 이루자고 말씀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본문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선은 오직 성도들의 구원과 연관되어있는 선함입니다. 이 선함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이 협력하여 이루는  하나님의 선입니다. 실제로 원문이나 영어 성경에도 합력하고 협력하다는 말이 없으며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구원을 위하여 일하신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일하시는 주체는 하나님이라고 명시되어있습니다. 우리 좋으신 하나님은 지금도 변함없이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성도들이 성화되어 영화되는 그 날까지 일하시고 계심을 기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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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21
10:30 PM22:30

성령님이 하시는 탄식

로마서(Romans) 8:26~30

로마서 8장에서 세 종류의 탄식이 나온다고 지난 주 설교 시간을 통해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들이 재림의 날에 성도들이 나타나기를 위해서 목을 빼고 간절히 탄식하며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첫 열매인 성도들도 탄식합니다. 성도는 양자됨을 소망하며 속으로 탄식합니다. 장차 나타날 예수님의 부활과 영광에 참여할 그 날을 기대하면서 현재는 탄식하며 신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탄식은 절망의 탄식이 아니요 소망의 탄식입니다. 마지막으로 성령님께서 성도를 위하여 탄식하십니다. 연약한 성도는 이 땅을 살아가면서 때때로 기도할 바를 모릅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그 때 성령님께서 성도를 위하여 친히 탄식하며 기도해주시며 도와주십니다. 여기서 돕다는 것은 ‘손을 맞잡아 준다'는 것입니다. 쓰러져있거나 지치있는 자를 향해서 위로를 건네여 손을 잡아주며 일으키듯이, 지쳐 낙심한 성도들이 기도할 바를 모를 때 성령님께서 그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번 주간은 우리를 위하여 탄식하시며 대신 기도하시는 위로의 성령님을 바라봅시다. 그리고 기대며 나누고 교제하는 한 주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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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15
7:30 AM07:30

피조물의 탄식

로마서(Romans) 8:18~25

미국의 아버지의 날(Father's Day)은 매년 6월 셋째 주일에 기념됩니다. 이 날은 아버지와 아버지 역할을 하는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현하는 날입니다. 1910년 워싱턴 주에서 시작되었으며, 1972년에 공식적인 국가 기념일로 지정되었습니다. 가족들은 선물, 카드, 식사 등으로 아버지에게 사랑과 존경을 표현합니다. 성경의 인물 중에 아버지의 신앙과 역할로 인정받고 존경받는 분은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신앙적으로 인격적으로 완전한 아버지의 모습과 역할이 어렵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완전하고 완벽한 한 아버지를 소개합니다. 그 분은 바로 인간들을 사랑하셔서 당신의 아들까지 십자가에 희생시키시며 그들을 구원하신 아버지 말입니다. 이 좋은 아버지 날에 아름답고 귀하게 양육해주신 육신의 아버지께 감사드립시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지금도 보좌에서 우리를 위해서 중보하시며 성령님으로 내 안에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온 종일 기억하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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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7
8:00 PM20:00

자녀삼으시는 성령님

로마서(Romans) 8:12~21

재벌 총수들은 자신의 아들에게 경영을 가르치기 위해서 신분을 밝히지 않고 인턴 사원부터 시작키시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일방적으로 고생을 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일종의 경영수업을 시키는 것입니다. 총수의 아들로서는 볼 수 없고 경험할 수 없는 가려진 평사원의 시각으로 회사를 보고 경험하라는 아버지의 배려입니다. 분명  인턴사원의 일과는 두려움과 좌절의 연속일겁입니다. 그러나 그 아들은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초라한 현실과 낮은 위치와 현재의 스팩에도 실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남들의 조건과 스팩을 부러워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상사들로부터 아무리 힘든 멸시천대를 받아도 쉽게 낙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회장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 한정된 시간의 고난을 아주 의미있게 받아들이며 배워갈 것입니다. 성도들은 기억하셔야 합니다. 우리들은 세상의 재벌 총수의 아들 정도가 아닌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이 세상 그 어떤  핍박과 낙심에도 절망할 수 없습니다. 이런 자녀의 신분을 주시고 가능케하시는 분이 바로 양자 삼으시는 성령님이십니다. 이 고마우신 성령님이 내 안에 거하십니다. 그 분께 감사하는 한 주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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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31
6:30 PM18:30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디모데후서(2 Timothy) 4:1~5

성도가 그리스도 예수의 아버지 하나님을 나의 '아바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된 것은 성령님께서 역사하시고 또 증거하고 증언하시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성령님은 그리스도의 영으로서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드러내고 믿게하여 하나님의 자녀되게 하시는 영이십니다. 그래서 성령님을 바울사도께서는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이 아니라 자녀로 삼으시는 영이라고 했습니다.(롬8:15)  로마서가 기록될 당시 로마의 입양제도는 성도들에게 생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네로황제부터 입양된 사람이었으니까요. 일단 친부로터 입양된 아이는 양부의 모든 권리와 재산을 법적으로 상속받을 수 있었습니다. 만일 양부에게 친자녀들이 있다 하더라도 그 권리를 잃지 않고 동등하게 법적으로 보장받습니다. 그로부터 과거는 완전 씻겨집니다. 심지어 과거의 채무까지에서도 면죄됩니다. 왜냐하면 그는 과거의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양부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성도들이 성령님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고 아버지의 모든 권리와 상속을 받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보다 뛰어나고 잘나서가 아닙니다.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고 성령님의 은혜입니다. 이렇게 좋은 성령님을 생각하고 기억하는 한 주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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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4
1:30 PM13:30

육신을 따를 것인가, 성령을 따를 것인가

로마서(Romans) 8:5~11

예수 안에 있는 자 즉, 예수를 믿고 영접하고 교제하고 누리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그것은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의 요구에서 그를 해방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죄로부터 해방받은 성도는 자기 원하는대로 살아도 되는 것입니까? 그에 대한 답을 오늘 본문이 하고 있습니다. 칭의 받은 성도는 자기 육신대로 살고 생각해서는 안되며 성령께서 인도하시는대로 살고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육신대로 생각하며 산다면 반드시 죽음이요 성령이 인도하는대로 생각하고 살면 생명과 평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육신대로 산다는 것은 타락한 자기 본성을 중심으로 산다는 것이고 성령대로 산다는 것은 성령이 나를 온전히 지배하여 그 분이 생각과 뜻대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이 번 한 주도 육신으로 생각하고 사는 길을 가지 말고 오직 성령께서 인도하시대로 말씀이 인도하시는대로 성령의 생각으로 행동하는 성도님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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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18
11:00 AM11:00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로마서(Romans) 8:1~4

제 26문 “전능하신 성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나는 믿사오며”라고 고백할 때 당신은 무엇을 믿습니까?

답: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하신 아버지께서 아무 것도 없는 중에서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또한 그의 영원한 작정과 섭리로써 이 모든 것을 여전히 보존하고 다스리심을 믿으며, 이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그리스도 때문에 나의 하나님과 나의 아버지가 되심을 나는 믿습니다. 그분을 전적으로 신뢰하기에 그가 나의 몸과 영혼에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시며 이 눈물 골짜기 같은 세상에서 당하게 하시는 어떠한 악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실 것을 나는 조금도 의심치 않습니다.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이기에 그리하실 수 있고, 신실하신 아버지이기에 그리하기를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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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10
9:30 PM21:30

내 속에 있는 죄가 문제입니다

로마서(Romans) 7:14~25

권성수 교수님의 로마서 주석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바울의 고향 길리기아 다소(터키) 근처에 한 종족은 살인자에게 아주 잔인한 형벌을 내렸습니다. 그것은 바로 살아있는 사람과 시체를 묶어서 공동체 밖으로 버리는 것입니다. 죄인의 다리와 시체의 다리를 묶고 팔은 팔끼리 결박했으니, 죄인이 묶인 그 끈을 풀지 못한다면 시체와 함께 썩을 것입니다. 바로 암덩어리와 같은 시체의 죽음이 살아있는 자에게 번져서 산 자를 썩게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자신이 그 시체에 묶인 사람 같다고 탄식을 합니다. 물리적인 몸은 아니지만, 영적으로 죄와의 갈등 속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고 탄식합니다. 그것에 이유는 자신 안의 죄가 선을 못하게 막고 오히려 죄를 짓는 자리로 끌고가기에 그것이 너무 곤고하고 비참하다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비참함은  스스로 해결할 길이 없고 오직 예수님만이 해결할 수 있다고 합니다. 구원받은 성도의 삶에서도 죄는 내 안에 머물러 살며  나를 원하지 않는 죄의 길로 끌고 갑니다. 그런데 이런 곤고하고 비참한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이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이것을 기억하는 한 주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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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3
6:00 PM18:00

율법에 대한 변호

로마서(Romans) 7:6~14

큰 병을 가지고 병원을 방문하면 의사들이 MRI를(자기공명영상) 꼭 찍도록 권유한다. 한 번 찍는데도 대단히 큰 금액이 들지만 의사가 추천하는 이유는 아주 미세한 상처나 종양도 오차없이 정확히 보고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병원을 방문하여 MRI기계로 영상을 찍어서 췌장암 4기라는 진단을 받고 앞으로 1달 정도 밖에 살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는 이 현실에 대단히 실망하고 낙담하게 되었지만, 결코 이 MRI 기계를 원망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이 기계 자체가 잘 못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환자는 자기의 병을 알게해줘서 고맙게 생각할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율법이 MRI 기계와 같이 죄를 발견하고 드러내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하는 역할을 합니다. 환자가 이 기계를 원망하지 않듯이, 우리도 율법의 잘못을 지적할 수 없습니다. 율법 자체는 하나님이 주셨기에 선하고 거룩한 것입니다. 이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내 힘으로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 없음을 인정하고 율법으로 구원을 이룰 수 없음을 인정하고 성령님께 의지하여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율법의 외형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본질을 깨달아 그리스도를 바라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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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26
10:30 PM22:30

율법으로부터 자유하라

로마서(Romans) 7:1~6

로마서를 기록했던 바울은 누구보다 율법에 열심이었고 진심이었던 사람입니다. 길리기아 다소에서 태어나서 율법을 연구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유학을 왔었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오직 율법만 생각하고 연구했던 율법의 종되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로마 성도에게 칭의를 받은 성도는 이제 그 율법과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율법과 완전 단절된 관계라고 선언했습니다. 사실 율법 자체는 하나님이 주신 선한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을 오해하여 율법의 행함이 구원의 근거가 된다고 가르쳤던 율법주의가 문제였습니다. 바울은 그 율법주의를 완전히 끊어내고 단절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입니다. 이번 주간도  주님 주신 구원을 깊이 생각합시다. 율법의 열심과 행위가 아닌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는 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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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19
9:00 PM21:00

부활의 최고 선물은 부활인 성도

로마서(Romans) 6:1~11

성도에게 있어서 부활과 부활신앙이란 성도가 죽은 후에 역사의 끝에서 주님 재림의 그 순간에 부활하는 것만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 미래의 부활도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왔고 또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은 사람의 부활도 옵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은 지금 이곳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성도들이 체험하고 적용하는 현재의 삶에 나타나고 적용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바울 사도께서는 로마서 6장에서 미래에 일어날 부활을 현재형 시제로 사용하여 부활을 살아가자고 권면했습니다. 성도에게 임할 그 미래의 부활이 너무나 확실하고 당연했기에 현재 시제로 당겨서 사용했던 것입니다. 분명 그리스도는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고 그 다음 열매는 우리들의 차례가 될 것입니다. 동시에 현재의 삶에서 주님의 부활이 소망이 되고 삶의 실제가 되는 역사를 이뤄내는 성도가 됩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죽기 전부터 이미 부활이셨고 지금도 부활의 그리스도로 성도와 함께 하심을 믿읍시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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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12
10:00 PM22:00

성화, 거룩을 위한 여행

로마서(Romans) 6:12~14

구원받은 성도는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많다고하여 그 죄악에 머물거나 즐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도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세례받았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연합하여 영적세례를 받았기에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죄에 대하여 죽고 다시 부활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칭의받은 성도는 구원받은 그 사실에 안주하여 머물 수 없습니다. 성도는 구원에 감격하고 감사하며 끊이없이 거룩한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성도를 부르신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결코 성도는 죄를 의도적으로 짓거나 은혜를 더하기 위해 죄 안에 머물 수 없습니다. 이미 죄의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영역으로 신분이 옮겨진 성도는 죄가 자연스럽지 않고 불편하고 고통스럽고 부자연스러운 존재인 것입니다. 한 주간도 죄에 머물러 죄를 쉽게 용납하거나 인정하지 말고 끝까지 피흘리기까지 대항하는 저희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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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5
10:00 PM22:00

죄에 대하여 죽은 사람

로마서(Romans) 6:1~14

칭의받은 성도는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죄에 대한 죽음은 육체의 시신이 모든 감각이 죽어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는 그런 상태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 원어적으로 죄로 죽었다는 것은 단순과거 단수형으로써 과거의 '그 죄'(아담의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이고 그 죄의 영역에서 죽었다는 것입니다. 구원받기 전에 죄의 지배 아래에서 죄가 왕노릇하던 그 영역에 있지 않고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의 영역 안에 있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성도가 죄에 대하여 죽었으니 죄에 대한 그 어떤 유혹이 사라져 없다거나 전혀 죄를 짓지 않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실제로 성도는 구원받고도 계속하여 유혹받고 죄를 짓고 삽니다. 그러나 더이상 성도는 죄 안에서 죄의 지배 안에 머물며 습관적으로 죄를 즐기며 지을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제 칭의받은 성도는 죄를 지을 수 있으나 죄를 짓는 것이 정상적이지 않고 불편해야 합니다. 한 주간도 이렇게  죄에 대하여 죽은 자라는 것을 알고 하나님 은혜 안에 머물며 죄를 미워하며 불편히 여기며 피흘리기까지 싸우는 성도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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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29
7:30 AM07:30

처음 아담과 마지막 아담

로마서(Romans) 5:12~21

동서를 막론하고 학문적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사람은 프로이드와 막스라고 합니다. 심리학자 프로이드는 무의식의 세계를 발견하여 사람의 정신 영역이 얼마나 넓고 가능성이 있는가를 알려준 업적이 있었습니다. 또 막스는 공산주의 창시자로 지금까지 권력의 피지배 계층을(프롤레타리아) 새로운 권력의 창출자요 보았던 점이 큰 공헌을 한 이유라고 합니다. 오늘 롬 5:12-21에 인류의 영적 세계 속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첫 번째 아담으로' 그의 불순종으로 죄가 들어오고 죄로 인하여 결국 사망이 온 인류 안으로 들어와 사망아래 놓이게 한 사람입니다. 다른 한 사람은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로서 죄와 사망으로 멸망하게된 인간을 화해하고 구원하기 위해 오신 하나님 아들입니다. 성도는 마지막 아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이 예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한 주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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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22
6:30 AM06:30

구원받은 자의 다음 단계

로마서(Romans) 5:1~11

바울은 로마서 1-4장에서 모든 사람은 죄인이며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될수 있다고 말해왔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의 삶은 어떠해야 할까요? 그 대답이 5장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먼저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고 사람들과도 화목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깨어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그것으로 이웃과도 화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구원자는 환난 중에 낙심하지 않고 소망으로 즐거워합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오히려 환난을 즐거워하며 자랑합니다. 왜냐하면 그 고난이 인내와 연단을 만들어내어 참 소망을 주기 때문입니다. 한 주간도 구원받은 자로 하나님과 이웃과 화평하며 삽시다. 환난이 오더라도 그 고통을 즐거워하며 자랑합시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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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15
8:30 PM20:30

구원의 기준이 바뀐 적은 없습니다 II

로마서(Romans) 4:13~25

롬4장에서 바울께서 말씀하는 믿음은 막연하고 맹목적인 믿음이 아닙니다. 그가 말하는 믿음은 반드시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믿음이고 그 약속을 바라보는 믿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약속하지도 않았는데,맹목적인 신념만 가지고 노력하고 행동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일종의 자기 신념이고 적극적 사고 방식일 뿐입니다. 그 다음으로 바울 사도께서 말하는 믿음은 일반 상식적인 확률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령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항에서 이륙한 비행기가 정해진 시간에 안전하게 도착할 것이라는 99%의 가능성을 믿기에 안심하고 비행기를 탑니다. 로마서에서 말하는 이런 기술과 경험 그리고 상식과 지식을 초월하는 믿음을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바울께서 말씀하사는 믿음은 입으로만 말하는 믿음이 아니라 실제적인 헌신과 행동을 수반하는 믿음을 말합니다. 로마서 4장에서 바울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이러한 믿음이 있었기에 의롭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참 맏음에는 약속이 있고 확률적인 지식을 넘어서고 헌신하고 행동하는 믿음입니다. 이 번 주간은 내가 과연 무엇을 믿으며  신앙생활을 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하고 고민하는 한 주가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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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8
1:30 PM13:30

구원의 기준이 바뀐 적은 없습니다

로마서(Romans) 4:1~12

16세기 루터와 칼빈이 종교개혁을 일으킬 당시 부패한 로마카톨릭의 신앙은 행함과 공로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이신칭의'사상은 너무나 생소한 것이었습니다. 종교개혁시대 뿐 아니라, 바울이 로마교회에 편지를 보내던 그 시절에도 믿음으로 의에 이른다는 진리는 이해할 수 없는 궤변과 같은 소리였습니다. 특히 율법의 열심으로 평생을 살았던 유대인들에게 그 믿음의 논리는 정말 혐오 그 자체였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율법의 행위와 노력으로 할례받은 자들만이 의에 이를 수 있다고 믿었고 생명처럼 율법을 준수해 왔었습니다. 그렇게 믿고 있던 유대인들에게 바울 사도께서는 유대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다윗도 율법의 열심이 아닌 믿음으로 의에 이르렀다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롬4) 이렇게 믿음으로 의에 이른다는 '이신칭의'사상은 루터나 칼빈 같은 종교개혁자들이 먼저 고안한 말이 아닙니다. 이미 성경 말씀에 율법과 할례가 주어지기 전부터 하나님은 율법없이 할례없이 아브라함을 그의 믿음을 보시고 의롭게 하셨던 것입니다. 율법의 행위와 열심이 아닌,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이 은혜에 감동하고 감격하고 감사하는 한 주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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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1
8:30 AM08:30

구원받은 성도가 하지 말아야 할 것들

로마서(Romans) 3:27~31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진노 아래있는 인간에게 바울 사도께서는 '그러나 이제는'는 이라는 말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반전을 이야기 합니다. 앞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의 즉, 구원이 펼쳐질 것이라 말합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제물 삼으시고 그 피로 당신을 의롭게 드러내시고 동시에 그 예수님의 피를 믿는 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의롭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칭의'라고 하였습니다. 죄있는 자를 법정에서 무죄 선고를 해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죄를 용서받고(용납) 구원받은 무엇을 해야겠습니까? 여기에서 바울을 구원받은 자가 하지말아야 할 것을 언급합니다. 먼저는 자기 자랑하지 않는 것이고 남을 차별하지 않는 것이고 마지막으로 울법을 파기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를 믿고 의롭다함을 받은 성도는 자신을 자랑하지 않고 믿움으로 서로 세워주고 차별하지 않으며 율법의 선한 뜻을 알고 지켜나갑니다 한 주간도 예수 믿는 성도로서 이 3가지 적용을 하면서 살아가는 여러분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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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22
7:30 PM19:30

그러나 이제는

로마서(Romans) 3:21~26

오늘 함께 살펴볼 롬3:21-31절의 말씀은 성경 중에서 가장 중요한 본문이라고 강조하시는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많습니다. 롬1:18-20절에서 바울사도는 헬라인이나 유대인 모든 사람은 죄인이며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다고 그 죄를 고소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반전이 시작됩니다. '그러나 이제는'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바울께서 설명하십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복음 안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선포합니다. 이 의는 인간이 노력해서 획득되어지는 의가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에게 주어지는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스스로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기에 자신의 믿음을 자랑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자신의 믿음이 크고 강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믿은 것 같지만 그 믿음은 주님께로부터 선물로 내게 온 것입니다. 예수님께로부터 온 선물인 이 믿음이 복음의 출발입니다. 이 믿음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는 한 주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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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15
10:30 PM22:30

유대인의 반문

로마서(Romans) 3:1~20

바울신학 연구로 유명한 영국 신약학자 톰 라이트라가 '유대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라는 부분을 이렇게 예화를 들면서 설명했습니다. 그가 뉴질랜드로 여행을 떠나려하는데, 영국의 친한 친구가 뉴질랜드에 있는 가족에서 선물을(고가의 보석 목걸이) 전해줄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처음에는 선뜻 하락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유는 그 선물이 고가의 목걸이였고 분실했을 경우에 보상해할 부담이 켰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친구의 부탁을 수락했고 보석을 가져가서 무사히 전달해 주었다고합니다. 그는 말씀을 맡은 유대인이 자기와 같은 상황이라고 하였습니다. 유대인은 선물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들의 역할은 말씀의 소유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전달하는 것입니다. 이미 신앙생활을 수 십년간 해왔고 선조때부터 예수를 3-4대째 믿어왔고 교회 안에서 중요 직분을 맡았다면, 그분은 말씀을 먼저 맡은 성도에 매우 가깝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말씀을 먼저 맡은 성도라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말씀의 소유를 주장하기 보다 말씀을 나누고 전하는 통로의 삶을 사는 것이 맞을겁니다. 한 주간도 맡은 말씀을 어떻게 나누고 전할지를 생각하고 또 실천하는 성도님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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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9
12:30 AM00:30

마음의 할례를 받은 자

로마서(Romans) 2:17~29

온유하시고 사랑이 많으셨던 주님께서 강력하게 정죄하시고 저주를 선포하셨던 부류가 있었습니다. 바로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쳤던 바리새인과 서기관이었습니다. 그들은 평생을 율법을 연구했고 목숨을 걸고 지켜왔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을 향하여 저주받을 위선자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위선'(히파크러스)이라는 단어는 헬라문화권에서 사용된 말로, 말과 행동이 분리된 연극(심파극, 이수일과 심순애)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말과 행동이 달랐던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향하여 위선자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설교본문에서도 이런 위선자들이 등장합니다. 다른 사람은 가르치지만 자신을 가르치지 않고, 도둑질하지 말라고 선포하나 자기는 도둑질하고, 간음하지 말라 말하지만 자기는 간음했던 유대인들 말입니다. 바울사도께서는 이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음을 강력한 지적하며 회개하고 돌아올 것을 선언합니다. 바울의 이 경고의 말씀은 당시 유대인 뿐 아니라, 오랜 기간 동안 예수를 믿어왔고 큰 직분을 가진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한 주간 나 자신의 말과 행동의 일치를 돌아보는 시간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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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1
6:00 PM18:00

하나님의 공정한 심판

로마서(Romans) 2:1~16

사람들은 타락한 본성을 가지고 있기에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타인에게는 야박하고 비판적입니다. 남이 자기의 생각을 강하게 주장하면 완고한 것이고 내가 그러면 심지가 굳은 것라고 생각합니다. 남이 지출을 많이하면 씀씀이가 헤픈 것이고 내가 지출이 많으면 통이 큰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이 잘못을 지적하면 비판적인 것이고 내가 비판하면 예리한 것입니다. 남이 잘 차려입으면 허영심이 강한 것이고 내가 그러면 패션감각이 뛰어난 것입니다. 남이 위험을 감수하면 무모한 것이고 내가 위험에 뛰어들면 용감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유대인들은 특별히 더 교만하였습니다. 바울이 이방인의 불경건과 불의에 대해서 하나님의 진노아래 놓이게 되었다고 말했을 때, 그들은 두 손들어 환영하며 인정했을 겁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유대인들을 향하여 너희들도 동일한 공정한  하나님의 심판아래 있는 존재임을 선언합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시기에 언제나 공정한 심판을 하십니다. 이 공의로운 하나님을 바라보는 한 주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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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25
9:00 PM21:00

하나님의 의와 반대되는 사람들의 불의

로마서(Romans) 1:18-32

로마서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라는 것입니다.(롬1:7) 그리고 1:17절 안에서 핵심구절이 바로 '하나님의 의'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공의로운 하나님의 성품이며 하나님의 공의로운 행동을 말하기도 합니다. 이런 하나님의 의가 가장 잘 드러났던 곳이 구약의 언약입니다. 이 언약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신실하게 약속을 지킬 때 당신의 의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모든 구약의 언약이 가르키는 것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한 십자가의 구원입니다. 이 십자가의 구원에서 하나님의 의가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인간은 범죄하여 죽을 수 밖에 없었지만 하나님이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기로 약속하셨고 그것을 신실하게 지킴으로 의가 드러났던 것입니다. 이렇게 그 신실한 하나님의 의가 복음 안에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의는 오직 인간의 노력과 행위가 아닌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믿음으로만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 주간도 이 하나님의 의를 묵상하며 배우고 실천하는 성도님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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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18
10:00 PM22:00

복음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 II

로마서(Romans) 1:16~17

예수 그리스도를 ‘내가 믿어’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이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믿고 믿음을 가지기 전에 하나님께서 나를 믿어주셨던 하나님의 믿음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안 믿겠다고 하면 하나님의 믿음(신실함)이 폐하여 지는가? 그럴수 없다는 것입니다.(롬3:3) 이것은 하나님도 성도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이 땅의 자녀들이 죄사함받고 돌아와 새생명을 누리고 회복할 날이 올 것이라 믿었습니다. 인간들의 아무리 하나님의 믿음을 부정하여도 그 믿음은 폐하지 못합니다. 사람의 믿음이 견고하여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신실했기에 여기에 서있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믿음이 우리의 믿음을 견인하여 ‘믿음에서 믿음으로’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이 번주도 우리를 끝까지 믿어주시고 기다려주시는 당신의 믿음에 감사하며 바라보는 주간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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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11
8:30 PM20:30

복음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

로마서(Romans) 1:8~17

바울 사도께서는 롬1:14절에서 당신은 그리스사람에게나 미개한 사람에게나, 지혜가 있는 사람에게나 어리석은 사람에게나, 다 빚을 진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빚을 지다는 의미는 직접적으로 누구에게 돈을 빌려 빚을 졌다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간접적으로 빚을 진 경우입니다. 가령, 가까운 친구가 그의 동생에게 1만불을 전해달라고 내게 주었다면, 나는 그 1만불을 그 동생에게 줄 때까지 그 친구에게 빚을 지게되는 것입니다. 바울의 빚진자의 개념은 이런 경우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복음을 바울에게 주면서 모든 민족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다면, 복음을 받은 바울이 이 복음을 전하여 줄 때까지 하나님께 빚진자가 되었기에 복음을 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런 복음의 빚진 자의 의미는 바울뿐 아니라, 복음을 먼저 받은 모든 성도들에게도 해당됩니다. 이 번 한 주간도 복음의 빚진자의 맘으로 복음을 전하고 소개하며 살아가는 성도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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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4
to Jan 5

바울의 인사

로마서(Romans) 1:1~17

복음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유앙겔리온'이라는 말로 좋은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주로 정치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지금의 황제가 지고 다음 황제가 오실 것이며 새 황제의 시민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에 그 새로운 황제를 예수 그리스도라고 선포하며 증거했습니다. 성도님들에게 가장 좋은 소식, 복된 소식인 복음은 무엇입니까? 그 복음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제법 많은 크리스챤들에게 이 복음이 실종되고 있습니다. 복음 없는 종교적 삶에 만족하며 살아갑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그 삶에 만족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매일 매순간 예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 앞에 서야 합니다. 다시 복음을 들으며 복음을 바라보고 복음을 환영하며 그 앞에 서야합니다. 2025년 한 해도 다시 복음 앞에 서는 간절한 성도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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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
28
8:30 AM08:30

능력이 아니라 사랑

요한복음(John) 21:18-25

요한복음을 1년 넘게 살펴보면서 어떤 부분이 기억에 남아있습니까? 저자는 사도요한은 책의 기록 목적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임을 믿게하고 그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20:31) 또한 그는 복음서와는 달리 예수님의 신성에 대해서 과감하게 표현했습니다. 예수님은 태초부터 계셨던 말씀이며 하나님 그 자체라고 선언했습니다. 동시에 예수님은 생명의 떡, 세상의 빛, 양의 문, 선한 목자, 부활이요 생명, 길이요 진리요 생명, 참포도나무라고도 했습니다. 당시 이 책의 수신자 였던 유대인 크리스챤에게 이런 표현은 충격적이었지만 요한은 돌이킬 생각이 없어보였습니다. 이러한 요한복음의 기록목적과 예수님의 믿음의 결과와 신성에 대해 정확히 말함으로 장차 사도행전 시대를 살아가야 할 유대인 성도들에게 큰 도전과 용기를 주었고 동시에 은혜와 감격으로 살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기준과 방법이 지혜로운 감각있는 적응력과 사회적 관계라고 말들합니다. 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도이고 참 제자라면 오직 예수님에 대한 바른 이해와 믿음이 진정한 세상을 이기는 지혜이고 해결입니다. 이 사실을 붙잡고 한 주를 살아내는 성도님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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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
21
8:00 PM20:00

메시야가 원했던 사람들

누가복음(Luke) 2:1~20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처음으로 만나고 경배했던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왕족이나 종교지도자가 아니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천대받고 경제적으로 최하층에 머물고 종교적으로 부정한 자로 취급되었던 들판의 목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천군 천사 오케스트라를 보내주시고 메시아에 대한 예언과 탄생 본질 그리고 태어난 정보를 주면서 메시아를 만나보고 첫 경배를 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인도하심은 인간이 누릴수 있는 최고의 영예였습니다. 동시에 이 만남과 경배는 장차 메시아가 이 땅에서 만나야 할 첫 대상이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 강력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진정 메시아는 이 땅에서 가장 소외되고 힘없고 가난한 자들의 구주가 되시려 오셨습니다. 이 성탄에 하나님이 찾으시는 성도가 됩시다. 비록 불안 위치에서 힘겹게 살고 가진 것은 없지만 속한 그 자리에서 메시아를 기다리고 경배하려는 마음을 가진 성도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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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
15
8:00 AM08:00

부활의 주님이 주시는 회복

요한복음(John) 21:1~14

부활하신 주님께서 갈릴리에서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시는 장면은 다소 오해가  있어왔습니다. 십자가로 가시기 전에 주님께서는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당신이 먼저 갈릴리로 가실 것이고 그 곳에서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마침내 주님이 부활하시고 처음으로 막달라 마리아를 만나시고 베드로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하신 말씀도 갈릴리에서 다시 만나자는 그 약속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주님은 당신의 제자들을 멋진 예루살렘이 아닌 갈릴리에서 다시 만나자고 하셨을까요? 그것은 갈릴리는 자신들이 자라온 고향이고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이 곳 사람들에게 더이상 자신을 감출 수 없었고 그들은 훤히 알고 있었습니다. 자기를 가릴 수 없는 이 현장에서 예수님을 주로 바로 고백하는 것이 진정한 증인이 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고향에 먼저 도착한 제자들은 주님을 인내하며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기도하면서 기다리지 못했고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며 기다리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자들은 인내하지 못하고 배를 타고 조업을 나갔습니다. 약속을 망각한 그런 제자들을 주님은 질책하지 않으시고 숯불을 피우시고 떡과 생선을 준비하여 섬겼습니다. 다시 사명을 상기시켰고 사도로 세워주셨습니다. 이 번 주간 주님은 갈릴리의 그 약속을 그 만남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부활 후의 약속을 기억하는 한 주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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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
8
9:30 AM09:30

도마의 위대한 고백

요한복음(John) 20:24~29

요한복음 가운데 완벽한 예수님에 대한 고백은 단연 도마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라"라는 고백입니다. 사실 도마는 예수님의 부활의 예언 말씀을 믿지도 않았고 부활에 대한 동료 제자들의 증언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님의 못자국을 보며 손 가락을 못자국에 넣어보고 손을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조건적인 믿음도 이해해주시며 도마에게 부활한 모습으로 다시 오셨습니다. 주님은 개인적으로 도마를 배려하셔서 무려 8일을 기다려 다시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지극한 주님의 사랑과 배려는 결국 요한복음의 가장 위대한 신앙고백을 탄생하게 했던 것입니다. 납득이 되어야만 믿겠다는 도마의 이기적이고 교만한 신앙은 주님에 의해 변화되고 가장 뜨겁게 전도자로 순교자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당시 도마는 주님의 복음을 가장 먼 변방 남인도 체나이까지 전했고 그 곳에서 창에 찔려 순교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반도까지(삼국시대) 영주까지 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런 부활의 변화와 능력이 이 번 주간도 내 삶 가운데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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